학부생 시절을 생각하면 일품이냐 분식이냐를 성심껏 고민하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와서는 느티나무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선후배, 동기들에게 인사하며 햇볕을 쬐던 기억이 납니다. 동기들과도 종종 이야기할 때, ‘참 교수님들이 일부러 이런 애들만 뽑으셨나~’ 싶을 정도로 끼리끼리 모여있단 생각에 사춘기 아이들처럼 웃기도 했고요. 뭔가 회상하면 행복했던 유년 시절의 조각처럼 남아있네요. 저는 고3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인도창 프로그램이 있는 성공회대에 지원하게 되었고 학교를 다니는 내내 인도창 프로그램에 지원하겠다는 계획에 변경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준비를 한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가겠다는 확고한 결정만은 있었지요. 그렇게 처음으로 부모님 품을 떠나 처음 해외로 나와 본 저는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 라는 담담한 결론을 내렸고 또, 그에 반해 ‘컬쳐 쇼크’ 운운하며 한국인으로 납득되지 않거나 생경한 인도의 국민성과 문화적 다름에 일희일비 하는 1년을 보냈습니다. 앞서 정착한 선배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환경은 의도치 않게 저의 주체성을 키워줬더군요. 하지만 생각보다 늘지 않은 영어 실력에 고민이 많을 때 즈음 선배님의 연락을 받고 인터뷰 기회를 얻어 Oracle India Pvt.에 입사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근무한 3년이 제 글로벌 경쟁력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나는 괜찮은 부모인가?’ 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되는데 이때 가끔은 우리 교수님들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열림, 나눔, 섬김’의 교육 이념이 맘에 들어 성공회대의 교수가 되기로 하셨다는 다짐의 이야기, 학생들의 계절학기처럼 교수님들이 들으시던 인문학부 수업 이야기, 저는 나름 교수님과 내외하던 중이었는데 인도를 방문하신 교수님께서 제가 사투리를 많이 고쳤다며 관심을 표해주시던 모습 (저는 솔직히 대학생이 된 이후로 표준어만 구사한 줄 알았습니다) 등등 몸소 실천하신 열림, 나눔, 섬김을 통해 따뜻하게 새겨진 배움을 아직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