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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77

한신대학교 국문학과 김용희 명예교수

수정일
2022.08.10
작성자
대학발전실
조회수
358
등록일
2022.08.09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길은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한신대학교 김용희 교수가 성공회대학교에 발전기금 1천만 원을 기부하고 성공회대학교 기부자클럽 아름다운 동행에 가입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는 어느 봄날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김용희 교수를 만났다.

 

김용희 교수님 안녕하세요.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해오셨고, 최근에는 1천만 원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성공회대학교에 기부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사실 성공회 세례교인입니다. 70년대에 고려대학교 영문과 교수였던 돌아가신 김진만 교수님이 이화여대 문학 세미나에 오셔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성공회 교인이었던 김진만 교수님을 따라서 성공회 동대문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김진만 교수님이 세례를 받으라고 하셔서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 뒤 교회를 매주 나가지는 못했지만, 성공회와 성공회대학교에는 각별한 애정이 있습니다.

 

 

한신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어서 오랜 기간 재직하셨습니다. 어떻게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국문과 교수를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국문과 다니던 친구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권유해서 국문과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국문과가 무엇을 배우는 곳인지 잘 몰랐습니다. 국문과가 문예창작학과하고는 달라서 글쓰기를 배우는 학과는 아니었습니다. 대학 때 소설을 쓰기는 했지만, 작가로서의 재능에 한계를 느끼고 국문학 공부를 더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석사와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학위를 취득한 후에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가르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가르치는 사람으로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관심 있는 분야에 인내심을 갖고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리 계획하고 선택한 길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이 길이 운명처럼 다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시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한신대학교에서 국문학과 학과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국문학과 학생이 총학생회장을 하고 있었는데 시위과정에서 학교 기물을 파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과장으로 교무위원회에 가서 의견을 개진하게 되었습니다. 퇴학을 포함한 중징계가 논의되었는데 제가 끝까지 반대해서 중징계는 면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과장의 마음보다는 엄마의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도 쓰고 수필집도 쓰고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에 재능이 있으셨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전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처음에는 사투리가 섞인 말투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고는 했습니다. 학교생활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4학년을 마치고 5학년으로 올라갔습니다. 숙제로 방학 동안 일기를 썼는데 담임 선생님이 전체 학생 앞에서 제 일기를 읽어주면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취미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나서 죽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국어 시간에 삶과 죽음에 대한 제 생각을 글로 써서 냈더니, 국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제가 쓴 글을 비웃었습니다. 그때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고, 글 쓰는데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와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였던 돌아가신 이어령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제 작품을 읽어주셨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다시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자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재능이 있는 학생이 되기도 했고, 재능이 없는 학생이 되기도 한 것이죠.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 것입니다.

소설은 등록금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때 학보사에서 1년마다 소설 공모를 했는데 여기에 당선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해 이화여자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소설을 공모했는데 기성 문인을 모두 포함한 공모전에서 제가 당선되었습니다. 아마 소설을 쓰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서 제가 당선된 것 같습니다.

 

 

정년 퇴임 후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주로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지금 농사를 짓고 있어서 한가하지는 않습니다. 밭이 300평 정도 되는데 취미를 넘어 굉장한 노동이 필요합니다. 농사를 지은 기간은 한 10년 정도 됩니다. 농사짓는 곳이 집에서 27km 떨어져 있습니다. 3월 말부터 김장철까지 스물일곱 번 정도 밭에 가고 있습니다. 고된 노동이지만 제가 농사짓는 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가르치는 일과 농사는 생명을 키운다는 측면에서 매우 비슷합니다. 농산물을 주변 이웃과 나누면서 이웃과 소통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오신 교수님이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전보다 경쟁이 심하고 규격화된 사회지만 길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미리 갈 길을 계획하고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행동하는데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에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길은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끝으로 성공회대학교가 어떤 대학이 됐으면 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공회대학교는 처음 시작은 신학교육으로 출발을 했고 지금은 종합대학이 되었습니다. 성공회대학교는 작은 규모지만 인문학에 강하다는 특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 교육이 인문학보다는 취업 위주의 교육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다른 대학이 실용 위주의 학문을 추구해도 성공회대학교는 인문학에 대한 강점을 계속 살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삶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김용희 교수는 지금 동학 농민운동의 3대 지도자 중 한 명인 김계남을 소재로 한 소설을 준비 중이다. 그의 식지 않는 열정의 결과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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